환자 안내문을 AI로 '쉬운 말'로 바꿀 때 — 점수는 좋아져도 내용이 빠질 수 있습니다
검사 준비 안내, 수술 전 주의사항, 퇴원 후 관리문. 병원이 환자에게 건네는 종이는 늘 어렵다는 말을 듣습니다. 생성형 AI에 넣어 쉬운 말로 바꾸는 시도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조용히 빠질 수 있는지를 연구 두 편으로 정리하고 실무 순서를 제안합니다.
병원이 환자에게 건네는 종이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검사 전 금식 안내, 수술 전 주의사항, 퇴원 후 관리 방법, 각종 동의서와 서식. 이 자료들을 만들고 고치는 일은 대개 행정 부서와 간호 현장의 몫인데, 늘 따라붙는 말이 “환자가 못 알아듣는다”입니다.
그래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 안내문을 붙여넣고 “쉬운 말로 바꿔 달라”고 시켜 보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요. 있다면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요. 최근 연구 두 편이 이 질문의 양면을 꽤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읽기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첫 번째는 환자 교육자료 60편을 여러 AI에 넣어 보고 전후를 잰 연구입니다(JMIR, 2025). 미국 심장협회·암학회·뇌졸중협회가 공개한 자료에서 각 20편씩을 골라, 챗GPT(GPT-4)·제미나이·클로드에 각각 쉬운 말로 바꾸게 한 뒤 ‘학년 수준’을 비교했습니다.
여기서 학년 수준이란, 그 글을 무리 없이 읽으려면 대략 몇 학년 정도의 읽기 능력이 필요한지를 문장 길이와 단어 구성으로 추정한 점수입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쉬운 글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자료는 9.6~10.7 수준, 즉 고등학생 정도의 읽기 능력을 요구하는 글이었습니다. AI를 거친 뒤에는 챗GPT 7.6, 제미나이 6.6, 클로드 5.6으로 모두 내려갔습니다. 이 연구가 인용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권고는 환자 자료를 6학년 수준 이하로 쓰라는 것인데, 그 기준선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내용이 틀리는 일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60편 중 부정확한 결과물이 챗GPT는 0편, 제미나이와 클로드는 각각 2편(3.3%)이었습니다. 다만 이 값들은 모두 영어 자료를 영어 기준 점수로 잰 결과입니다. 한국어 안내문에 그대로 옮겨 놓고 “우리도 6학년 수준이 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읽기 쉬움’과 ‘이해했다’는 다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연구들을 한데 모아 살펴본 문헌 검토입니다(JMIR, 2026). 31편의 연구를 정리한 결과는 세 가지 지점에서 신중합니다.
첫째, 목표한 수준에 정확히 맞추는 일은 모든 AI에서 어려웠습니다. 특히 낮은 학년 수준을 목표로 할수록 그랬습니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게”라고 지시한다고 그 수준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내용이 그대로 보존되는지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원문과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정확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있던 말이 조용히 빠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필 빠진 것이 부작용이나 금기, 응급 시 연락 방법이라면 그 안내문은 쉬워진 게 아니라 위험해진 것입니다. 이 대목은 이전 글 챗GPT에 병원 업무를 맡기기 전에에서 다룬 문제와 곧장 이어집니다.
셋째, 검토진이 짚은 가장 큰 빈틈은 평가 방식이었습니다. 31편 모두 결과물을 전문가가 평가했을 뿐, 실제 일반인에게 읽혀 이해되는지를 확인한 연구는 없었습니다. 읽기 점수는 문장 길이와 단어 난이도를 재는 구조적 대리 지표일 뿐이어서, 점수가 좋아졌다고 환자가 실제로 이해했다는 보장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검토는 AI를 보조 도구로만 쓰고, 환자에게 배포하기 전 전문가 검토를 반드시 거치라고 정리합니다.
실무에서 쓴다면 이 순서를 권합니다
첫째, 원문을 고정하고 시작합니다. AI에게 안내문을 새로 쓰게 하지 말고, 병원이 이미 확정한 원문을 주면서 “표현만 쉽게 바꾸고 내용은 더하거나 빼지 말 것”이라고 범위를 못 박는 편이 낫습니다. 지시하는 방법은 병원 공문·안내문 프롬프트 기본 글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바뀐 글과 원문을 나란히 놓고 항목별로 대조합니다. 새로 생긴 문장을 찾는 것보다, 없어진 항목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금식 시간·복용량·방문 일시 같은 숫자, 주의사항과 금기, 연락처가 하나도 빠짐없이 남았는지 확인합니다.
셋째, 용어는 공적 자료와 맞춥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의 알기쉬운 건강용어는 질병·증상·해부학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 놓은 자료입니다. AI가 만들어 낸 표현보다 이런 공적 설명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나오는 AI 용어는 사이트의 용어 사전에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넷째, 마지막 확인은 사람이 합니다. 담당 부서와 해당 진료·간호 부서의 검토를 거친 뒤 배포하고, 안내문 서식만 다루되 환자 개인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입력하지 않습니다.
핵심 요약
- 환자 교육자료 60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생성형 AI는 읽기 수준을 9.6
10.7에서 5.67.6으로 낮췄고, 부정확한 결과물은 챗GPT 0%, 제미나이·클로드 각 3.3%였습니다. - 다만 이 값은 영어 자료를 영어 기준으로 잰 것이라 한국어 안내문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 연구 31편을 모아 본 검토에서는 목표 수준을 정확히 맞추기 어려웠고, 내용 보존이 일정하지 않았으며, 실제 일반인에게 이해되는지 확인한 연구는 한 편도 없었습니다.
- 실무에서는 원문을 고정해 표현만 바꾸게 하고, 빠진 항목이 없는지 대조하고, 용어는 공적 자료에 맞추고, 배포 전 사람이 최종 확인하는 순서가 안전합니다.